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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조건부 감사함!

작성일
2026-06-16
조회수
59



박동호 인권재단 사람 이사장


필자는 이동할 때 대중교통을, 버스와 마을버스, 지하철과 고속철을 이용한다. 사소하다 할 수 있지만, ‘완전한 새로움’ 앞에서 아주 가끔 ‘난감’하다. 


1. 경기도에 소재한 요양원을 자주 찾는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고마운 ‘지공족(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사람들)’용 지하철 카드를 버스 단말기에 슬쩍 태그하면 난감해진다.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안내를 듣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당황한다. 가방에서 지갑을 찾아 그 안에 숨어 있는 다른 신용카드를 찾아 다시 태그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따르는 승객이 있을 때는 그에게 불편을 안긴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게다가 정류장마다 역동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규칙적인 ‘삑-’ 소리의 흐름을 깨뜨려, 버스 안 다른 승객들의 ‘평온’을 훼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미안하다. 하지만 여태까지 기사한테서나 뒷사람에게서나 다른 승객한테 핀잔을 들은 적은 없다. 붐비는 시간이 아니기도 했겠지만 고맙게도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건 필자에게는 사소한 난감함이겠으나, 마음 급한 많은 이들에게는 불편함 또는 민폐일 터이다. 하여 출퇴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바깥출입은 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하면 그렇게 일정을 계획한다. 


하지만 학교에 가야 할 때는 다르다. 강의 시간을 필자가 원하는 대로 배정받을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 학기가 돌아올 때마다 그저 오전 아홉 시에 강의가 배정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하는 그 힘듦뿐 아니라 지하철 운행의 지연과 정차로 겪었던 난감함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이지만, 전동차가 중간역에 멈출 때가 있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OO 역’에서 ‘OO 단체’의 시위가 있어 운행 지연이 불가피하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다. 객차 내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금세 대안을 찾지만, 필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몇 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지부터 다른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까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머릿속은 그 계산에 복잡해진다. 처음 무작정 기다리다가 낭패를 본 다음에는 주변의 젊은이들을 따라 내렸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나름의 눈치마저 빗나갔다. 빈 택시가 줄줄이 나타났지만 탈 수 없었다. 그들이 객차 안에서 이미 택시를 예약하고 지상으로 올라갔다는 것까지 눈치채지는 못한 까닭이다. 결국 강의 시간에 늦어 학생들에게는 폐를 끼쳤고, 학교에는 보강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스마트폰을 갖고는 있지만, 그들처럼 ‘스마트하게’ 활용하지 못한 대가였다. 


그 부적응은 여전히 극복되지 못했다. 태만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매년 여러 번 강의나 회의하기 위해 먼 곳을 다녀와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불편한 적은 없었다. 평소 낯선 곳에 갈 때, 사전에 대중교통의 시간표와 경로를 꼼꼼히 점검하는 버릇 덕이다. 스마트폰으로 예매하지 않더라도,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 들르면 예매할 수 있었고, 그 운행 계획이 변경된 적도 없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철거 중인 고가도로 구조물의 붕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사고 발생 때도, 사고지점을 지나지 않기에, 안심했다. 하지만 귀갓길 고속 열차가 그 사고 때문에 23분이나 늦게 서울역에 도착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을 때, 그 난감함이란 위의 경우와 전혀 달랐다. 0시 25분 서울역을 지나는 마지막 지하철을 못 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리자마자 숨 가쁘게 뛰었고, 정말 다행히도 마지막 지하철을 탔다. 


2. 필자의 소소한 위의 난감함은 사실 ‘완전한 새로움’으로 겪는 ‘느린’ 또는 ‘뒤처진’ 사람의 일시적 감정에 불과하다. 대중교통수단이라는 범주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부문들 대부분은 ‘정말’ 새로운 것들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았으면서 필자가 버스를 처음 이용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그것도 딱 한 번! 40여 분 걸리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대중교통수단으로 등장한 지하철은 6학년 때 처음 건설되었다. 도심까지 갈 일이 아예 없었으니, ‘땅속을 다니는’ 그 기차는 소문만으로도 신기했다. ‘삑-’ 소리 내는 ‘카드’든 신용카드든 상상도 하지 않았고, 종이 ‘회수권’이나 금속 ‘토큰’은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다. 


한 사람이 목격하고 살아온 사회의 변화(진보) 속도는 정말 놀랍다. 필자 같은 게으르거나 뒤처진 사람은 가늠조차 불가할 정도다. 필자에게 난감함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그 조건, 곧 운송·교통수단의 변화에 경탄하면서, ‘나 때’를 소환한다면, 아마 소통 자체가 차단될지도 모른다. 오래전 일이어서도 그렇겠지만, 아예 공유·공감할 만한 그 실체가 너무 이질적이어서일 것이다.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예약하여 시공의 물리적 조건의 제약을 간단하게 극복하는 사람들의 그 손가락 몸짓은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이 그들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에게는 ‘경이로움’과 ‘완전한 낯섦’으로 다가오는데 말이다. 이렇게 동일 현상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누군가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지하철 카드든 신용카드든, 단말기에 갖다 대면 ‘삑-’소리를 내든, ‘잔액이 부족합니다’라 알리든, 핀잔주지 않고 기다려주든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하게 예매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조금만 고생하면 너무나 수월하게 예매할 수 있고, 또 그 덕에 먼 곳까지 가서 강의하고 당일에 귀가하게 해 준 고속철과 지하철이든, 정확한 안내이든, 역시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그 새로움이 가끔 난감함을 안길지라도, 필자를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여 ‘내다 버리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포용해주었고, 기초적인 수준만 갖추었음에도 나름 평온한 일상으로 이어가게 해주는 까닭이다. 


3.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기술(AIT)은 사회 전 분야와 부문에 적용될 것이다. 앞에서 필자에게 난감함을 안겨준 교통·운송 분야의 새로움은 여러 빙산 가운데 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정치활동, 경제-사회생활, 문화생활, 국제 관계 맺기 등의 모든 사회생활 분야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 직장과 시장, 지역과 역내 더 나아가 세계 공동체 등의 모든 사회조직에도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아니 지구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세계의 새 시대가 펼쳐지더라도, 낯설어 난감해하는 사람을 포용하고, 그가 기초적 수준에 머물러 있든 도무지 적응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든, 그럭저럭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게 하는 사회여야 한다. 인간 생활의 어떤 분야·부문이든 어떤 사회조직이든 ‘완전한 새로움’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 대세는 사람을 위하고 동시에 무리생활하는 인간 사회를 위한 것임은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80억여 명의 사람이 이 지구라는 행성을 터전으로 하여 살고 있다. 지구는 ‘분모’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은 ‘분자’에 비유할 수 있다. 스마트한 사람도 소소하게 난감해하거나 완전히 낯설어하는 사람도, 미생물도 코끼리도 그 ‘분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음 역시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인간은 인간에게 인간이어야 하고, 인간과 다른 생명은 심지어 물과 땅과 하늘은 공생·공존해야 하며, 지구는 전장이 아니라 공생의 터전이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얼마 전 지하철 객차 안에서 종이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놓고 난감해하는 필자 또래의 대여섯 분을 만났다. 서울에서 열린 잔치에 왔다가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환승역을 놓치지 않을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그 종이 지하철 노선도는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러웠을까! 필자가 체험하는 ‘난감함’은 비할 바가 못 됐을 것이며, ‘완전한 낯섦’이라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서울의 지하철 이용에 그나마 익숙한 사람으로서 티를 냈다. “다음 역에서 내려 파란색 선을 따라가는데, ‘반드시, 꼭! 서울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시면 됩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이든, 파란색 표시든, 또래 낯선 이의 안내이든, 그들에게 평온한 일상을 돕는 그것이 되었기를. 


세상의 겉모습을 바꿀 과학기술의 그 놀라운 역량이 ‘모든 인간의 존엄(Dignity)과 인권 및 책무의 보장에, 그리고 건전한 생태의 보전과 보편적 공동선(Universal Common Good)의 증진’에 이바지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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