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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제도 바깥 나홀로 노동자의 상호부조를 위한 마중물

작성일
2025-12-10
조회수
107


송명진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무국장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어요. 경력을 쌓아야 하니까요. 일이 밀려 있어도 무조건 받습니다. 처음에는 단가가 낮으니까, 플랫폼에서도 마음껏 일을 몰아넣는 거예요.”


프리랜서의 고충을 듣는 자리에서 경력 11년 차 출판 일러스트레이터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플랫폼업체의 수수료율은 높아지지만 일자리 진입장벽은 낮아지며 보수 단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오는 하소연이다. 1,041명의 프리랜서가 응답한 우리 공제회의 2023년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들의 1년간 프로젝트 평균 계약기간은 5.6개월에 불과했고, 불규칙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며, 응답자의 21.3%는 보수 지연 또는 미지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ILO는 정규직·전일제·단일 고용주와의 지속적 고용관계라는 전통적 고용형태에서 벗어난 비표준 고용형태 노동이 2020년 전 세계 고용의 40%에 달한다고 추정하며 플랫폼노동과 프리랜서 확산을 중요한 변화로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 종속성과 전속성을 지닌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를 보호 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으며, 2020년 전후로는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를 포괄하는 ‘노무제공자’의 사회적 보호를 노동사회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법·제도의 개선 속도는 현실 변화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제도 도입 초기에는 당사자가 겪는 일의 전 과정 중 극히 일부만 보호되기 마련이다. 기업의 보호책임도, 국가의 제도적 안전망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일감·소득 불안정, 정보 비대칭, 협상력 열위, 비용·위험의 개인 부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에 놓여 있다. 이들은 기존 제도에 기대기도, 국가만 바라보기도 어려운 처지다. 그렇기에 당사자 스스로의 자조적 안전망이 필요하지만, 서로 흩어져 일하는 특성상 외부에서 그 형성을 도울 필요가 있고, 그 역할은 노동단체와 시민사회가 우선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를 새로운 유형의 단체로 구상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0년 하반기부터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를 위한 노동공제조직 설립이 본격 검토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설립 재원과 초기 사업이었다. 이미 조직된 당사자 단체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일하는 개인들이 ‘공제’ 활동에 곧바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사업을 우선 제공해 공제회 사업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쌓아가는 경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동조합들의 모금과 기부로 최소한의 기본재산과 운영재원은 확보했지만, 초기 지원사업을 어떻게 시작할지는 난제였다. 그때 금융산업공익재단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시기와 내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지원이었다.


소득이 불안정한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임금노동자에 비해 정기적 저축이 어려운 편이다. 그럼에도 각종 비용과 사고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면서도 사회보험 보호는 취약하고, 금융기관의 대출 서비스에서도 제약을 받는 만큼 ‘목돈 마련’의 필요성은 더 크다. 적금액의 20%에 해당하는 응원금을 3년간 지원하는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자산형성지원사업은 이러한 간극을 메우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사업에 참여한 공제회 회원들은 6개월마다 응원금을 받을 때마다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라며 “저축하는 보람이 생긴다”고 말했고, 장비 구입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거나 교육을 수강하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산형성지원사업은 이렇게 빠르게 공제회의 대표 사업으로 자리잡았고, 회원 확대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고정된 일터가 없는 환경에서 적금 납입을 증빙하는 간단한 서류 제출도 어려워하는 회원이 예상보다 많았다. 통장 잔액 부족이나 바쁜 일정 때문에 납입일을 놓쳐 응원금 신청 시기를 넘기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혜택을 받지 못한 회원들의 항의로 실무자들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경험이 축적되고 절차가 개선되면서 안내는 체계화되고 문의도 크게 줄어, 지금은 초기에 비해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공제회는 아직 재정적으로 취약하고 사업 운영에 어려움도 많지만, 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회적 보호영역을 제시하며 ‘노동공제’라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자산형성 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기존 안전보건 관리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던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의 안전환경 조성, 역량강화 교육, 커뮤니티 활성화 지원 등 공제회가 기반을 다지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힘을 보태주었다.


공제회는 앞으로 자산형성 지원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체 공제사업을 설계해 상호부조를 구현해 나가려 한다. 명절선물이나 경조사 지원 등 직장 복지가 부재한 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에게 작은 울타리가 될 수 있는 알찬 서비스들을 준비 중이다. 아울러 민간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자산형성 지원사업을 노무제공자 퇴직공제나 공적연금과 같은 제도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금융기관 이용이나 공적 서비스 접근을 어렵게 하는 소득·경력 증명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마련과 시범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은 공제회 자체의 힘만으로, 그리고 회원들의 기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많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안정한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울타리와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분들의 지원이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를 향한 연대와 지원은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지속적인 상호부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나아가 제도·권리가 부재한 새로운 노동영역이 확장되는 현실에서,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규칙을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 일은 우리 경제와 고용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제회의 출발부터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신 금융산업 노·사에 깊이 경의를 표하며, 사업 수행 과정에서의 미숙함을 이해하고 인내로 함께해 주신 금융산업공익재단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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