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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남과 북의 만남을 위하여
- 작성일
- 2025-10-21
- 조회수
- 38

김영우 해솔직업사관학교 이사장
76년 축복된 삶을 영위하면서 요즘처럼 ‘통일’, ‘남북소통’이라는 단어들이 시큰둥하게 들리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20세기 말, 냉전 시대의 종말과 함께 체제, 이념논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주 스페이스 개발, AI와 로봇시대가 선진 인류를 온통 뒤집어 놓는 시대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에만은 유일하게 ‘남북분단 장기화와 핵 위협’이라는 민족사적인 아픔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민이 있다.
여기에 대응하는 우리 남한사회의 생각 차이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신념의 차이와 겹쳐서 더욱 깊어진 남남갈등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게다가 통일이라는 명제는 역사적 당위성 차원에서 이제껏 존중되어 왔다면 그마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실제 우리 사회의 통일 담론에 있어서 피로감은 크게 누적되어 있다.
필자 개인에 국한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비대한 체구와 위성 발사 장면, 듣기만 해도 섬뜩한 여전사의 어나운스먼트이다. 우리가 왜 이 평화로운 땅에서 그 뉴스를 보고 살아야 하는지, 안 보면 안 되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한편 남한에서는 통일 이야기 하면 50대 이상 심지어 70대, 80대 옛 시절 한 보직하던 분들의 강연이요, 인터뷰 기사다. 언론의 논조도 사시의 방석 위에 앉아 주장을 달리한다. 정작 10년, 20년 후에 이 사회의 모든 영욕을 감당하여야 할 젊은 세대의 말은 듣고 보기 힘들다. 60대 이상 세대는 4.19혁명 이후 이 나라의 모든 역사를 쓴 세대로서 지금도 그 역할을 하여야 할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면 년륜이 말해 주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진다. 좋게 표현하면 경륜이요, 나쁘게 보면 이기적 성향이다. 10억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의 인재들이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꽈리를 틀고 있고 호시탐탐 한국의 인재도 유혹을 한다. 우리 청년들은 ‘국장’, ‘해장’을 넘나들면서 주식투자를 한다. 북한의 청년 중 몇 명이 마이크로소프트의 Bill Gates를 알며 테슬라의 Elon Musk를 알고 있을까. 그래도 우리 후손들이 한국말을 하는 북한 청년들이 낫지 수 개국에서 오는 동남아 청년들과 같이 사는 게 나을까. 북한의 인구도 시장이요 지하자원도 돈이다.
오늘의 현재 속에는 과거의 유산이 있고, 미래의 방향성이 보인다. 과거의 유산에는 국민총소득 36,624불, 중·선진국 풍요함이 있고, 주4일제 근무가 바람직하고 독신주의, 미출산이 늘어나는 MZ세대가 있다. 미래의 방향은? 우리 사회의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라. 10년 후의 전망을 어떤 기관에서 얼마로 발표하고 있는지. 우리가 좋아하는 그래프를 보라. 어떤 상승세가 되는지 어떤 하락세가 되는지. 인구 변화 추이를 보자. 무지한 사람이 보아도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모두가 결혼을 하고, 한 부부가 적어도 5명은 출산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에 강력한 반론이 있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요 앞으로도 결코 후진할 수 없는 세계 10대 강국이라고. 거기다 통일이 되면 5대 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도 한다.
강력한 반론을 실현시키는 임무가 오늘 우리 사회에 주어지는 책무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겸손해져야 한다. 집단적 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역사에는 흐름이 있다. 그 역사적 물줄기를 바꾸려면 엄청난 에너지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 속에 우리 모두의 겸손이 없으면 에너지는 생성되지 않는다. 나는 때로 이 용어를 성숙이라는 단어로도 쓴다.
둘째는 다른 사유 등은 제쳐 놓고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고자 한다. 최근에 있어서 남북문제 해결에 최대장애물은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갈등’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남남갈등의 해소 없이는 통일 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 갈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유는, 통일 화두는 이제 우리가 북한 동포를 위한 통일이 아니라 남한사회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 즉 우리 자신을 위해서 통일을 진지하게 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나는 ‘통일’ 대신, ‘통일로 가는 길’ (the road to Reunification)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길의 과정은 우선 ‘남과 북의 만남’이요, 실행방안은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지원)’단계를 거쳐 ‘남과 북의 사회문화적 통합’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는 초기 단계에서는 사실상 경제적 지원임에 다를 바 없다. 퍼주기 논쟁은 일의 해법이 아니다. 지금에 있어서는 30년 전부터 활성화된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입국이고 또 그들을 통하여 흔히들 말하는 ‘통일 연습’을 한 셈이다. 긴 안목으로는 이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훗날을 위해서 ‘지금 & 여기서’ 우리는 조그만 일부터라도 실행해야 한다. 북한의 문을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얼마나 큰 부담이 있더라도 두드려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금융산업공익재단에 예의가 아니지만 조그만 제안을 하고 싶다. 본 재단이 가지는 상징성은 기금의 규모가 아니라, 국내 산업계의 혈맥인 금융계 기관이 공동 출연해서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는 줄도 알고 있다.
금년도 사업 방향의 “포용금융, 일자리, 미래세대, 지역상생” 4개 분야에 앞으로는 “남북만남(가칭)”이라는 꼭지를 하나 추가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리고 싶다.
이 꼭지는 대중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기금 사용의 수혜자가 많은 것도 아니다. 년도별 프로그램 효과가 가시적으로 특히 계량화할 사업도 아니다. 그리고 사업자 선정이나 지속성도 다른 분야와 같아서 될 일도 아니다. 때로는 재단의 방향성에 근거하여 주관적 판단도 해야 하고, 사업 내용도 국내외로 다양할 수도 있다. 다른 분야에서 전문가 선정위원이 있듯이 이 꼭지는 년간 별도로 구성되는 팀이 고민하고 발굴하여 사업을 전개하여야 할 사안이다. 객관성 확보에 매몰되면 값어치 있는 사업에 힘을 실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만남”이라는 꼭지가 장기적 안목에서 남북통일의 시간까지 이어짐으로써 역사적 소임에 일부분을 감당하는 일이 바로 이 사업이다. 그리고 금융산업공익재단의 한 꼭지가 실효성있는 모범이 되어 이 사회 다른 기관에서도 본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잘 알려져 있는 “통일과 나눔”재단은 그야말로 통일전용 사회적 캠페인 기관이다. 바라 건데, 이사장이 바뀌면 사업이 흔들리고, 시국이 이상하면 사업 내용도 바뀌는 꼭지가 아니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사명에 일조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한다.
이미 필자가 운영하는 ‘(사)해솔직업사관학교’에서는 재단 설립 초기에 프로포절을 제시하여서 3년간에 걸쳐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 해솔을 지원해 달라는 청원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 사업은 해솔학교의 기술자격증 취득 실습장으로 세워져 지금도 여러 청장년들의 국가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