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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닫힌 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일

작성일
2025-08-14
조회수
211


전상혁 가치있는누림 센터장


요즘 우리는 흔히 ‘MZ세대’, ‘요즘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적극적이고 똑똑하며, 때론 이기적이라는 말들까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런 통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20대와 30대는 학교도, 취업도, 연애도 없다. 햇빛을 본 지 몇 달, 몇 년이 지난 청년도 있다. 가끔은 가족과 말없이 마주한 채 방 안에 조용히 갇혀 지내는 청년. 그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아무도 모른 채 잊혀진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고립·은둔청년’이라고 부른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같은 단어로 불려온 이 현상은 뉴스에서도, 정책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024년, 이들을 직접 마주했고, 함께 걸어보았다. 사단법인 가치있는누림은 금융산업공익재단과 협력하여 은둔고립청년 통합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청년들을 만나기 전까진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혼자 방 안에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세상과 단절된 그 모습은 쉽게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졌다. 이건 그저 게으르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의 고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상처와 무너짐의 결과였다. 가정에서의 방임과 폭력, 학교에서의 따돌림, 끊이지 않는 실패와 무력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불안과 외로움. 이런 것들이 누적되며 마음의 문을 하나씩 닫게 되었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물러나는 것이다.


 이런 청년들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것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처음부터 문을 두드릴 순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곳곳의 일상적인 공간부터 찾기 시작했다.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기관, 주거지역 등 도움이 필요한 청년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조심스럽게 접근하였고, 누군가의 주변, 아주 평범한 골목 어귀에도 말없이 숨어 있는 청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 한 공간씩 천천히 연결의 실마리를 만들어갔다.


 단순한 상담이나 일회성 만남을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체험홈을 통해 집 밖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새로운 일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고 생필품과 식료품 등 물품 지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심리상담과 정서 지원 프로그램도 병행하며 단지 생활을 돕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데 집중했다. 이런 지원들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청년들과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처음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청년이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회복해 갔고, 누군가는 짧은 외출로,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용기로, 각자의 속도대로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청년은 "그냥 누군가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동아줄을 잡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고 그 청년은 여러 지원을 통해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스스로도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내 깨달았다. ‘괜찮음’이 영원하진 않다는 걸. 사업이 끝난 뒤, 혹은 일상으로 복귀한 듯 보였던 청년이 다시 고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그 공백기, 즉 지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마음은 회복 되어가지만, 여전히 주변엔 안전한 관계도, 머물 공간도, 나를 기다려주는 이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다음 걸음을 지역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단기간의 ‘지원’에 그치지 않고, 청년 곁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연결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청년이 다시 고립되지 않도록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의 힘을 믿는다.


 다행히 이 작은 시도는 지역사회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파장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관심이었지만 점차 “우리도 함께하고 싶다”, “이런 청년이 우리 주변에도 있는 것 같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있던 가족, 학교, 주민들, 그리고 여러 기관들이 ‘고립·은둔청년’이라는 이름 너머, 한 사람의 삶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청년을 단순히 ‘돕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을 닫았던 한 사람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단 한 명일지라도, 이 일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고립은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책임지고 함께 풀어가야 할 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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